Plan B
Plan A = 바로 나 자신
퇴사를 결심하고 스타트업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며, 나는 한동안 이 선택이 맞는지 틀린지를 계속 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 자체가 바뀌었다. 이게 맞는 선택인가가 아니라, 이 선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그 과정에서 내가 정리한 머릿 속 생각들을 여기 남겨둔다.
Plan A와 Plan B : 뒤집어 생각하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중심에 놓는다. 직장이 흔들리면 인생이 흔들린다. 나도 오랫동안 그랬다.
그런데 퇴사를 결심하고 pre-A 스타트업 합류를 앞두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 합류가 Plan B.
내 인생의 목적과 방향,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Plan A다.
이렇게 놓으면 달라지는 게 있다. 스타트업이 잘 안 되더라도, "내 계획이 망한 게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 하나가 바뀐 것뿐"이 된다. 스스로를 '직원'이 아닌 1인 기업가로서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맺은 존재로 정의하면, 흔들림의 무게가 달라진다.
스타트업을 '실험실'로 쓰는 법
합류를 하나의 실전 훈련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내 돈과 시간을 직접 태워 창업하기 전에, 이 환경에서 가설을 검증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라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이 회사가 망하더라도 나에게 남을 '이동 가능한 기술(Transferable Skills)'은 무엇인가?"
초기 팀 빌딩 경험, 투자 유치 프로세스 관찰,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의 감각. 이것들이 명확할수록, 회사의 생존 여부와 나의 성장은 분리된다. 여기서 만나는 동료, 투자자, 파트너들도 훗날 내 Plan A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그 관계를 잘 쌓는 것도 전략이다.
기록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다
입사 첫날부터 기록하기로 했다. 단, '결과'가 아닌 '결정'을 기록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중에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가장 아쉬운 건 "무엇을 했다"는 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가 사라져 있는 것이다. Pre-A 단계는 매일이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어떤 데이터와 논리로 그 선택을 했는지, 반대 의견은 무엇이었는지를 남겨두면 훗날 내 사업을 할 때 강력한 오답 노트가 된다.
스타트업의 혼란을 불평하는 대신, "이 문제를 내가 어떻게 시스템화했는가"에 집중하기. 3개월 만에 나오더라도, 그 밀도 높은 기간의 기록이 다음 스텝의 무기가 된다.
이탈 조건을 미리 정해두는 것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냉정할 때 기준을 세워두는 것. 이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정한 이탈 조건은 두 가지다.
내가 주도권을 갖기로 한 역할과 책임이 일방적으로 변동 통보될 때
대표님과의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깨졌을 때
업무적 충돌은 조율할 수 있다. 하지만 인격적 불신이나 가치관의 훼손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 기준을 미리 써두면, 나중에 힘든 상황이 와도 "감정에 치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둔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된다.
첫 한 달의 우선순위
입사 후 첫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도 정리했다.
1. 팀 빌딩 및 워크플로우, 조직문화 세팅
처음 1~2주는 바로 바꾸려 하기보다,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팀의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확립할 수 있다.
2. 프로덕트 방향성 및 전사 정렬
구두로 합의한 내용을 문서화된 전략 초안으로 먼저 제시하고 확인받는다. 이것이 나중에 일방적인 역할 변동을 막는 근거가 된다. "무엇을 만들자"가 아니라 "이것이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전사가 같은 언어를 쓰도록 정렬하는 것이 핵심이다.
3. 성장 핵심 가설 기반 첫 실험 성공시키기
거창한 시스템보다, 한 달 안에 지표로 증명 가능한 가장 작고 확실한 실험에 집중한다. 이 첫 번째 성공이 "이 사람의 판단이 맞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주도권은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마지막으로
Plan B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Plan A가 더 선명해졌다.
직장이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어떤 환경에 있든, 그 환경을 내 성장의 재료로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준은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미리 세워두어야 한다는 것.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Hope is not a strategy)."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을 대비하는 것. 그 균형이 결국 더 과감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